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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iz Times] "저 동양인 여자, 한달 못버티고 회사 나갈거야"
그 동양인 여자, 6 년을 버티고 창업해서 대박
기사입력 2017.07.14 04:08: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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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셸 강 코그노상트 창업자 겸 CEO

한국이 극심한 정치적 혼란기를 겪고 있던 1981년. 서강대학교를 다니던 대학생 강용미 씨는 미국으로 유학을 떠난다. 당시 한국은 여성의 사회 진출이 많지 않았고 기업에서 기대할 수 있는 역할도 무척 낮은 상태였다. 이런 분위기 속에서 강씨는 글로벌 기업의 최고경영자(CEO)가 되겠다는 꿈을 키웠고 미국 유학을 선택했다. 부모가 딸의 혼수를 위해 저축했던 돈을 가지고 떠났던 강씨는 결국 미국 헬스케어IT 회사인 코그노상트(Cognosante)의 창업자이자 CEO인 미셸 강이 돼서 한국으로 돌아왔다.

매일경제 비즈타임스는 지난 4일 이화여대에서 열린 `이화-루스 국제세미나 2017`에서 기조연설을 하기 위해 방한한 강 CEO를 처음으로 인터뷰했다. 이 행사는 이화여대가 여성 차세대 리더 양성을 위해 미국의 헨리루스재단과 공동으로 주관하는 것이다.

강 CEO는 시카고대를 졸업하고 미국 회계컨설팅 회사인 EY에서 경영컨설턴트로 일하다 글로벌 방위산업체 노스럽그러먼에서 임원을 지냈다. 그러다 2008년 마흔여덟이라는 적지 않은 나이에 헬스케어IT 회사인 코그노상트를 창업한다. 미국 공공의료 시장이 IT를 통한 혁신이 필요하다는 것에서 사업 기회를 발견했고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직접 비즈니스에 뛰어든 것이다.

이 회사는 현재 미연방 정부와 48개 주정부, 워싱턴DC에 IT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컨설팅, 비즈니스 아웃소싱 등 다양한 서비스도 미 정부와 정부 관련 기관에 제공한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보건복지부, 국민건강보험공단 등 의료보험 관련 정부 기관들에 IT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이다. 직원 수는 약 2000명, 매출은 2억5000만달러 수준이다. 향후 기업공개도 검토하고 있다. 한국에서 미국으로 이민을 떠나 배우자의 도움 없이 스스로의 손으로 굴지의 중소기업을 세운 여성 창업자의 스토리는 극히 드물다.

강 CEO는 "여자들이 만든 회사가 매출 100만달러(약 11억원)에서 더 커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데 그걸 넘게 해주는 것이 팀"이라면서 "회사 매출이 2000만달러일 때도 10억달러 회사 수준의 임원들을 고용했고 그에 맞는 인프라 투자를 했다"고 설명했다. 이로 인해 기업이 상승세를 타자 코그노상트는 지난 5년간 매년 60%씩 성장할 수 있었다.

그는 중소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에 대해 "작은 회사는 해고할 때 더 조심해야 한다"면서 "고용(Hire)보다 해고(Fire)에 더 신경을 써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회사에 맞지 않는 직원에 대해서는 솔직하게 `회사를 떠나달라`고 얘기를 하되 그가 다른 직장으로 옮길 수 있도록 최대한 도와주고 위로금(severance pay)도 충분히 챙겨줘야 한다고 말했다. 아래는 그와의 일문일답.

―1980년대 초 미국으로 혼자 떠났다.

▷우리 세대에선 나 같은 사례가 독특했지만 지금 젊은 세대에서는 독특하지는 않을 것 같다. 당시 한국에서 대학 들어갔는데 여자로서 경제와 경영을 공부하는 사람은 나밖에 없었다. 당시에는 경제경영 전공해서 졸업하고 큰 회사에 들어가도 여자는 비서만 하는 등 길이 정해져 있었다. 그래서 생각해보니까 억울했다. 똑같이 공부했는데 왜 여자만 비서를 해야 되나. 그래서 미국에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혼수할 돈을 가지고 미국으로 갔다고 들었다.

▷미국에 갈 돈이 없으니까 부모님께 내가 결혼할 때 혼수를 안해 주셔도 되니 그 돈을 지금 달라고 했다. 1년만 등록금을 대주시면 그 이후는 제가 어떻게든 하겠다고 말했다. 그런데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암살당하고 대학 캠퍼스가 다 문을 닫는 그런 상황이었다.부모님도 불안하셨는지 미국에 가는 걸 다행히도 허락해 주셨다. 그래서 시카고대학교 경제학과에 입학했고 MBA를 거쳐서 전략 컨설팅 회사에 들어갔다.

―컨설팅 회사에 들어간 이유는 무엇이었나.

▷당시 미래 계획을 세웠는데 처음 10년은 공부, 그다음 10년은 컨설팅 회사, 마지막 10년은 대기업에 들어가겠다고 생각했다. 컨설팅을 하면 마케팅, 파이낸싱 전부 알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걸 10년간 해보고 회사는 결국은 사람, 조직을 움직여야 하기 때문에 큰 회사로 들어가서 조직을 어떻게 움직이고, 사람을 어떻게 다루는지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다음으로 노스럽그러먼에 들어간 것인가.

▷포천 500대 기업 중 하나에 들어가려고 했다. 그리고 포천500 기업의 CEO에도 도전해보고 싶었다. 노스럽그러먼은 방산회사다. 미국에서도 두드러지는 백인 남성 중심회사이고 특히 이공계 박사들이 많았다. 임원들이 대부분 엔지니어들로 MIT 같은 명문 공대를 졸업해 그 회사에 들어가서 죽을 때까지 다니는 회사였다. 나는 경력자로 입사했는데 당시 여자도 적었지만 그중에서도 소수자인 동양인이었고 또 나이가 어렸다. 당시 나는 40대였는데 다른 임원들은 모두 50대 말~60대 초였다. 내가 들어갔을 때 "쟤가 얼마나 오래 버티나 보자"며 뒷말이 많았다. `한 달 내에 관둔다` `두 달 내에 관둔다`고 사람들은 말했지만 나는 6년을 견디고 나왔다.

―어떻게 극복했나.

▷실력으로 극복하려고 했다. 나에 대해서 차별이 있었지만 내 강점을 보여주겠다고 생각했다. 회의에서 전형적인 동양 여자처럼 가만히 앉아 있다가 가지 않았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그냥 내가 `앉아 있다 가겠지` 하다가 내가 말을 하기 시작하면 다들 놀랐다. 노스럽그러먼에 직원이 14만명이었는데 그중 임원이 200명이었다. 그런데 여자가 10%(20명)도 안 됐다. 미국에서는 여자들이 전형적으로 HR와 커뮤니케이션을 한다. 이를 커리어에서 마미(엄마) 트랙, 여자 트랙이라고 하는데 지원부서가 아닌 메인부서에서 여자는 나 포함해서 딱 둘이었다.

―창업을 결심하게 된 이유는.

▷내가 헬스케어IT 비즈니스 사업부 담당이었는데 국방회사다 보니 이 부문이 회사로서 중요한 부문은 아니었다. 하지만 2002년께 조지 W 부시 미국 대통령이 정부 차원에서 헬스케어에 많이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산업이 커지고 관련 기술이 들어오면서 여러 가지 기회가 보였다. 뭐를 해야 기회를 잡을 수 있는지가 내 눈에 보인 것이다. 노스럽그러먼은 굉장히 좋은 회사였지만, 국방회사이지 헬스IT 회사가 아니었다. 그래서 따져보지 않고 그냥 이걸 해야겠다 하고 뛰어들었다. 그때 내 나이가 한국 나이로 50이 다 됐다.

―한국이라면 은퇴할 나이에 창업했는데 두렵지 않았나.

▷나는 미혼이고 아이도 없다. 그래서 사업이 망하면 어떻게 살아야 할지 생각해봤다. 미국에 처음 가서 3개월 동안 시카고 한국 식당에서 웨이트리스를 했다. 그때 사회 바닥에서 노동 문제가 무엇인지 배웠다. 그때 5000달러를 벌었다. 그땐 굉장히 큰돈이다. 또 내가 이케아 가구 조립을 잘하는데 이걸로 1시간당 69달러를 받을 수 있었다. 아울러 파워포인트도 잘해서 이걸로도 돈을 벌 자신이 있었다. 창업에 실패해도 이 셋 중에 하나를 하면 먹고사는 데는 문제가 없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냥 창업을 했다.

―초기 시드머니는 어떻게 마련했나.

▷회사 임원으로 일하면서 받은 주식으로 회사를 차리려고 했다. 이것을 다 팔아서 현금으로 바꿔놓을지 아니면 필요할 때마다 팔지 고민했는데 리먼브러더스발 글로벌 금융위기가 닥쳤다. 2008년 9월 80달러였던 주가가 10월 되니까 39달러로 떨어졌다. 시장이 이러니 은행들이 돈도 안 빌려줬다. 결국 주식을 39달러에 모두 팔았다. 피 같은 돈이었다.

―미국 창업하면 실리콘밸리를 생각하는데 워싱턴DC에서 창업한 이유는.

▷창업은 물론 실리콘밸리에서 많이 하지만 미국 보스턴·시애틀 같은 곳에서도 창업이 활발하다. 워싱턴DC에는 미 연방정부가 있기 때문에 정부 관련 기업이 굉장히 많다. 미 헬스케어 시장이 3조달러 규모인데 이 중 50~60% 이상이 정부 프로그램에 의한 것이다. 메디케이드는 가난한 사람을 대상으로 하는 공공 의료프로그램인데 미국 아기들의 50% 이상이 메디케이드의 도움을 받고 태어난다. 또 퇴역군인, 현역군인, 정부 공무원도 모두 정부의 의료보험을 받고 있다. 이 과정에서 정부가 많은 보조금을 준다. 그렇기 때문에 미국에서 헬스케어를 하려면 정부를 알아야 한다. 정부의 기준, IT, 언어 등을 정부가 정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병원들도 전부 정부를 바라보면서 서비스를 하고 있다.

―코그노상트는 최근 5년간 매년 60%씩 성장했다고 들었다.

▷회사의 제품이 기발하고 혁신적인 것도 중요하지만 사업은 팀이 있어야 한다. 혼자서 못한다. 여성들은 기업을 혼자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퀄리티가 높다. 하지만 그러면 규모의 경제가 안 된다. 여자들이 만든 회사가 매출 100만달러에서 더 커지지 않는 경우가 많은 것이 그런 이유다. 그걸 넘게 해주는 것이 팀이다. 내가 잘할 수 있었던 건 운도 좋았고 타이밍도 맞았지만, 제일 중요한 것은 팀이었다. 나보다 똑똑한 사람, 엔지니어, CFO를 고용하고 각종 인프라를 갖춰야 한다. 나는 회사 매출이 2000만달러일 때도 10억달러 수준 회사의 임원들을 갖고 있었다. 성장이 오기 전에 미리 투자한 것이다. 나는 외부 투자를 받지 않고 순수하게 내 돈으로 시작해서 펑펑 돈을 쓸 수는 없었다. 대신 회사에서 나온 이익은 모두 임직원과 인프라에 투자했다. 사람들이 처음에는 `머리가 나쁘냐 저렇게 작은 회사가 왜 저렇게 많이 투자하느냐"고 얘기했다. 하지만 회사가 상승세를 타자 문제 없이 성장할 수 있었다.

―직원들에게 어떻게 동기부여를 했나.

▷나는 비전을 갖고 어필했다. 헬스케어 산업에 변화를 만들 수 있다고 말했다. 우리는 삶과 죽음을 다루는 것이고 임신한 사람, 의료 혜택이 필요한 사람들에게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또 굉장히 파격적인 스톡옵션을 줬다. 내가 회사를 돈 때문에 시작한 게 아니기 때문에 내 직원들이 모두 백만장자가 됐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오늘 연봉을 많이 받을 사람을 찾는 게 아니라 비전이 있고 지금은 돈을 많이 못 받지만 미래에 백만장자가 될 수 있기를 원하는 사람들을 고른 것이다. 사람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인센티브 시스템은 굉장히 중요하다. 우리 같은 회사는 돈을 많이 받는 걸 중요시하는 사람들을 뽑으면 안 된다. 그런 사람들은 큰 회사로 가야 된다. 나는 회사 업무 시간의 반 이상이 HR다.

―해고를 시키는 것이 쉽지 않을 텐데.

▷당연하다. 작은 회사는 해고할 때 더 조심해야 한다. 잘못 해고하면 `돈 없어서 해고한다`는 소리를 듣고 해고된 직원이 밖에서 회사 내부 사정을 다 이야기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고용(Hire)보다 해고(Fire)를 더 조심해야 한다. 내 경우에는 굉장히 솔직한 대화를 한다. `당신에게 맞는 환경이 아니므로 이 회사에서 계속 일하는 것은 당신도 힘들 것`이라고 얘기한다. 지금은 우리 회사가 잘나가니까 회사에 안 맞는 사람도 제 발로는 나가기 싫어한다. 그럴 때는 "향후 당신의 10~20년 커리어를 생각하면 당신도 힘들고 회사도 힘든 것은 좋지 않다. 당신에게 맞는 회사를 찾아주겠다"고 얘기한다. 그렇게 얘기하고 그냥 내보내는 게 아니라 위로금(severance pay)을 챙겨주고 다른 직장도 찾게 도와준다. 처음 뽑을 때 잘 뽑았기 때문에 이 직원도 아주 실력 없는 사람은 아니다. `큰 회사에 가면 더 잘될 거다` 그렇게 진심으로 이야기하면 처음에는 화를 내도 나중에는 결국 이해한다. 그렇게 회사를 나간 직원들이 아직도 나한테 편지하면서 `처음엔 실망했지만 나가는 사람에게 그렇게 진심으로 대해준 거 너무 고맙고 결국 잘됐다`고 얘기한다. 우리 회사에서는 안 맞는 직원이지만 그도 가족이 있는데 그걸 생각하면 막 대할 수 없다.

―비즈니스는 결국 의사결정이다. 어떤 원칙으로 의사결정을 내리나.

▷항상 내가 고객이면 뭘 원할까를 제일 먼저 생각한다. 나는 관습적으로 생각하는 걸 제일 싫어한다. 다른 회사들도 하는 거라서 하는 건 안 되고 내가 봤을 때 합리적이어야 하고 내가 이해를 해야 한다. 직원이면 직원, 고객이면 고객 입장에서 결정을 내린다. 그들은 어떤 걸 원할까. 그래야 어떻게 커뮤니케이션할지도 알 수 있다. 절대로 관습적으로 생각하면 안 된다. 직원들이 솔루션 제안서 같은 거 갖고 오면 그걸 덮어놓고 "당신이 고객사 CTO라면 이 제안을 받아들이겠느냐"고 항상 물어본다.

―2년 전 돌아가신 어머니를 자신 인생의 멘토라고 했다. 어떤 분이셨나.

▷어머니는 말하자면 선구자(Trailblazer) 같은 분이셨다(그녀의 어머니는 이윤자 전 국회의원이다). 교사를 하다가 세 딸을 낳고 집에 계시다가 우리가 초등학교 들어가자 다시 사회활동을 하셨다. 여성운동과 소비자보호운동에 힘쓰셨고 비례대표로 국회의원까지 하셨다. 우리가 자랄 때만 해도 여자가 일을하는 것이 흔치 않았는데 어머니는 여자도 경제능력이 있어야 한다고 항상 말씀하셨다. 또 본인이 나가서 일을 하셨지만 저녁은 항상 가족과 같이 드셨다. 그건 엄마로서 자신의 책임이라고 생각하셨다. 어머니는 여성이 장학사가 되고 국회의원이 되는 정말 초기 사례 중 하나였다. 사람들은 그래서 내가 어머니를 가장 닮았다고 한다.

―두 차례 인수를 통해 회사를 키웠는데 원칙이 있다면.

▷인수·합병(M&A)을 할 때는 항상 이유가 있다. 어떤 제품이 필요하다든지 새로운 시장에 들어가야 한다든지와 같은 것이다. 지금까지 2개를 인수했지만 앞으로도 계속 보고 있다. M&A를 하는 이유가 시장이 포화 상태라서 이를 인수해 비용을 절감하는 것도 있지만 나는 전략적인 성장에 더 포커스를 맞춘다. 인수 가격도 그렇게 많이 따지지 않는다. 지금을 보는 것이 아니고 미래를 보고 인수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진짜 투자는 사고 나서부터 시작된다. 그때부터 돈도 더 들어가고 시간도 더 많이 쏟아야 한다. 나는 인수에 대한 얘기를 시작하는 첫날부터 바로 그 회사를 어떻게 바꿀 것인지를 준비한다.

―향후 기업공개(IPO)를 하려 하나.

▷장기적으로는 그렇다. 개인적으로는 비상장회사(Private Company)로 있는 것이 좋다. 나는 회사를 물려줄 자식도 없고 그렇다고 물려줄 것도 아니다. 하지만 회사가 계속 존재하려면 상장하는 것이 제일 좋은 방법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미셸 강(한국명 강용미) 코그노상트 창업자

서울에서 태어나 서강대 재학 중 유학을 떠나 미국 시카고대에서 경제학 학사, 예일대 경영대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이후 경영 컨설턴트로 일하다가 2001년 노스럽그러먼에 임원으로 입사했다. 2008년 헬스케어 IT 회사인 코그노상트를 창업해 미 연방 및 주정부 대부분에 IT 솔루션을 제공하고 있다.
글로벌 회계 컨설팅 회사인 EY가 선정하는 2015년 올해의 기업가상(Entrepreneur of the Year)의 미국 서비스 부문상을 받았다. 2012년에는 코그노상트재단을 설립해 젊은이들에게 장학금을 제공하고, 미국 여성 예비역들을 후원하고 있다. 또한 코그노상트벤처스를 만들어 헬스케어 관련 스타트업에 대한 초기 투자도 하고 있다.

[이덕주 기자 / 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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