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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uman in Biz] 술 한잔, 시 한수, 노래 한곡
기사입력 2018.02.23 04: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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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주도를 언어의 그릇에 담은 시인 이생진은 그의 시 `술과 시인`에서 술 한잔 하자고 찾아온 이장과의 대화를 이렇게 써내려갔다. "술도 못하는 주제에 무슨 시냐?"고 / 그의 외로움을 달랠 수 있는 것은 술이었다 / 나는 그것도 모르고 시만 썼다.

술의 사전적 정의는 알코올 성분이 들어 있어 마시면 취하는 음료라고 돼 있다. 술은 어떻게 마시느냐에 따라 100가지 약 중에 으뜸이 되기도 하고 망신살과 망국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 술은 시인과 음악가의 가장 친한 친구였고 영감을 주는 마법의 음료이기도 했다. 중국의 시성 이백과 두보는 술을 먹물 삼아 시를 지었으며 시인 조지훈은 주도유단에서 술 마시는 단계의 등급을 18가지로 풀어내며 많이 안다고 교양이 높은 것이 아니듯 많이 마신다고 주격이 높은 것이 아니라고 했다. 살아 있으면서 유고집을 낸 첫 번째 시인 천상병은 술에 취하는 것은 죄이지만 조금씩 마시는 것은 죄가 아니라면서 인생은 고해이며 그 괴로움을 달래주는 것은 술뿐이라고 그의 평생 사랑 술을 변호했다.

술을 좋아했던 것은 음악가도 예외는 아니어서 베토벤은 생선이나 고기를 먹을 때 와인을 즐겼고 세상을 떠나기 직전인 1827년 악보출판사에서 보내온 와인을 바라보며 "아깝다. 너무 늦었어"라는 유언을 남겼다. 브람스는 잔이 넘치면 술잔을 핥을 정도로 위스키를 사랑했고, 무소륵스키는 연주 중 쓰러져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선물 받은 브랜디를 즐겁게 마시고는 42세 생일에 세상을 떠날 정도로 술을 좋아했다. 32세에 세상을 떠난 김광석 또한 공연이 끝나면 선술집에서 선후배들과 즐겁게 술을 마셨다. 동물원의 멤버로 유명세를 탈 무렵 술에 취해 탄 택시에서 "저희 동물원이에요"라고 자랑을 했다가 알아듣지 못한 택시기사가 그를 시내 동물원 앞에 내려줬다는 일화도 있다.

시와 음악은 하나의 통합된 예술이었다. 기원전 1046년 건국된 주나라 초기부터 춘추시대 초기까지의 시 305수를 수록한 시경은 당시의 노래 가사집이었다. 한국 고유 정형시 시조의 본래 명칭이 가곡이란 것은 시조가 음악 곡조였음을 말하고 있다. 시의 개념으로 쓰이는 영어의 `lyric`이나 독일어의 `lyrik`은 고대 그리스에서 연주되었던 하프와 비슷한 모양인 일곱 줄 악기 `lyra`에서 유래됐다고 하니 시와 노래는 고대로부터 늘 한 몸이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술과 시, 음악이 함께한 장면은 아름다운 한 곡의 노래로 남기도 했다. 가곡 `세월이 가면`은 1956년 명동 동방살롱 맞은편 경상도집이라는 막걸리집에서 박인환이 시를 짓고 이진섭이 곡을 붙여 테너 임만섭이 정식으로 부른 것으로 전해진다. 이 노래에서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네`를 읊었던 박인환은 시를 쓴 지 일주일 뒤 세상을 떠났다.

광복 이전 대중가요는 가요시라고 부를 정도로 시의 성격이 강했고 조명암, 김억, 박용호, 이하윤 등 작사가들의 상당수가 시인, 극작가 등 문인이었다. 1970~1980년대 시인 정호승은 따뜻한 시선으로 한국 사회의 그늘진 곳과 소외된 사람들을 위로하는 아름다운 시를 발표했다. 그의 이별 노래, 술 한잔, 수선화에게, 우리가 어느 별에서 등 수십 편의 시는 이동원, 양희은, 안치환 등의 목소리를 만나 노래가 된 대표적 사례다.

술 없이 시를 짓지 않은 고려의 문인 이규보, 조선의 윤선도, 정철이 그랬듯이 술은 시를 짓게 하고 노래를 부르게 했다. 82세에 세상을 떠난 가수 레너드 코언은 14개의 정규 앨범과 12권의 시집과 소설을 남겼다. 정지용의 시 `향수`는 작곡가 김희갑을 만나 불멸의 노래가 되었다.
류근의 시에 김광석이 곡을 붙인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을 부르며 우리는 여전히 김광석을 보내지 못하고 있다. 늘 경건하게 혼자 술을 마시며 고전음악에 심취했던 술의 시인 김종삼은 반쯤 남은 술병을 아내에게 빼앗긴 상황을 `극형`이라는 제목의 한 편 시로 남겼다.

좋은 술과 가슴으로 쓴 시, 고운 노래가 사라진 자리, 노래방에서는 끔찍한 사건이 벌어지고 술자리에서는 성추행이 난무하는 오늘. 맑은 술 한잔을 채우고 나지막하게 노래를 불러 본다.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 홀로이 개여울에 나와 앉아서.`

[이두헌 경희대 포스트모던 음악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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