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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sight] 은근히 맘 가는 이 카드처럼…넛지마케팅, 본질에 집중해야
기사입력 2017.11.03 04:04: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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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카오뱅크 체크카드.
지난달 발표된 2017년 노벨경제학상 수상자는 행동경제학의 대가로 유명한 리처드 세일러(Richard H Thaler) 시카고대 교수였다. 발표 소식을 접하자마자 제일 먼저 떠오른 생각은 `넛지라는 말을 또 한동안 지겹게 듣게 되겠구나`였다. 아니다 다를까. 세일러의 주요 저서인 `넛지`와 `똑똑한 사람들의 멍청한 선택` `승자의 저주` 등의 판매량이 수상 직전보다 40배 이상 증가하는 등 국내 서점가에서 다시 한번 열풍을 일으키고 있다고 한다.

사실 `넛지`는 국내에서 이미 40만부 이상이 팔린 베스트셀러였고, 지난 10년간 마케터들은 그들의 기획서에 `넛지 마케팅`이라는 용어를 전가의 보도처럼 활용해 왔다. 파리가 그려진 네덜란드 공항 화장실의 소변기, 나이키의 농구 골대 휴지통, 폭스바겐의 피아노 계단 사례 등을 얼마나 지겹게 들었는가. `타인의 행동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으로 정의되는 `넛지`는 마케터들이 자신의 아이디어를 돋보이게 만드는 데 더할 나위 없이 효과적인 콘셉트였고, 일상적으로 행해지던 드라마 PPL부터 셀러브리티를 활용한 SNS 마케팅, 대형 할인마트의 제품 진열 방식 등도 `넛지 마케팅`이라는 옷으로 갈아입고 홍보됐다. 어차피 한동안 `넛지 마케팅` 열풍이 다시 불어오는 것을 피할 수 없다면, 더 이상 새롭지 않은 이 개념을 단순히 프로모션 아이디어 또는 일회성 바이럴 마케팅 수준에서 재활용할 것이 아니라 상품 기획과 같은 보다 본질적인 영역으로 확장해서 적용할 수는 없을까?

행동경제학의 출발점은 소비자를 `최적의 선택만 추구하는 합리적 인간,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Econ)`로 바라보는 전통적 경제학의 첫 번째 가정을 부정하는 것이다. 주류 경제학자들은 수많은 시장 데이터를 수집하고, 통계적으로 분석함으로써 특정 현상을 예측할 수 있는 이론적 모형을 만들어내는 데 크나큰 공헌을 해왔다. 하지만 이런 이론적 모형으로는 시장의 `방향성`을 예측할 뿐, 시장 변화를 만들어내는 `인간의 행동`에 대해서는 정확히 설명하기 어렵다는 점에 행동경제학자들은 주목했다. 그들은 결코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될 수 없는 인간(호모 사피엔스)의 행동을 보다 정확히 이해하기 위해 주류 경제학에서 외면했던 `별로 중요하지 않은 요인(supposedly irrelevant factor)`들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말한다. 제한된 조건에서는 합리적으로 행동하는 소비자들이 소유욕, 시기심, 죄책감, 정의감 등 여러 가지 감정적 이유로 비이성적 행태를 보이는데, 세일러 교수는 `제한된 합리적 행동, 사회적 기호, 자기통제 결여`와 같은 인간적 특징이 시장의 성과뿐 아니라 개인적 결정에 심대한 영향을 미친다는 것을 증명했다.

여기서 마케터들이 주목해야 할 부분이 바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요인`들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다. 특히, 소비자의 심리적 변화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소비재 시장에 속한 브랜드들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지난 몇 년간 국내 거시경제지표는 지속적으로 부정적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재산업은 꾸준히 성장하고 있다. 흥미로운 점은 불황 속에서도 꽤 주목할 만한 성과를 내는 브랜드들의 경우, 바로 `별로 중요하지 않은 요인`에 대한 효과적인 접근을 해오고 있다는 것이다.

필자의 지갑 속 가장 잘 보이는 자리에는 수년간 현대카드의 레드카드가 자리 잡고 있다. 사실 꽤 오랜 시간 그 신용카드를 사용해왔음에도, 다른 경쟁사 카드보다 우월한 혜택이 무엇인지 정확히 알지 못했다. 신용카드의 본질적 경쟁 요인은 거래의 편의성이나 할인 혜택, 거래수수료, 유지비용 등에 있을 텐데 필자가 레드카드를 사용하는 이유는 단지 강렬한 레드컬러 카드가 내 지갑에 꽂혀 있는 것이 좋아서였다. 그런데 최근 그 자리를 카카오뱅크 체크카드가 대신하게 됐다. 카카오뱅크는 출범 후 3주 만에 체크카드 150만장을 발급했는데 이는 전체 가입자 중 75%에 이르는 숫자이며, 현대카드나 삼성카드의 체크카드 발급 매수를 훨씬 상회하는 실적이었다. 사실 카카오 체크카드는 `카카오 프렌즈`가 인쇄된 디자인 외에는 특별한 혜택이랄 게 없다. 무려 4주 동안 기다려 그 체크카드를 받아들자마자 오랜 시간 내 지갑 속 1순위였던 레드카드는 폐기되고 말았다. 별로 중요하지도 않은 캐릭터 하나 때문에 말이다.

지난 긴 추석 연휴 동안 공항에 몰린 수많은 인파를 보았을 것이다. 필자는 잦은 해외 출장으로 인해 공항에 갈 기회가 많은 편인데, 그때마다 눈길을 끄는 것이 바로 여행객들의 가방이다. 여행가방은 여행자들과 출장자들에게 무척 중요한 요소이다. 우리는 여행가방을 선택할 때 다양한 요인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한다.
얼마나 가볍고 튼튼한지, 휴대성과 편의성이 우수한지, 디자인이 얼마나 세련됐는지. 그렇다면 많은 여행자들의 로망인 리모와(Rimowa) 여행가방이 그토록 사랑받는 이유는 과연 무엇일까. 차별화된 기능과 혁신적인 기술? 품질에 대해 타협하지 않는 장인정신? 리모와가 획기적인 알루미늄 소재와 폴리카보네이트 재질을 도입했으며, 네 바퀴 굴림이 가능한 `멀티휠 시스템`과 손잡이 길이를 자유롭게 조절하는 기능을 최초로 도입한 제품이라는 사실을 알고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을까. 필자 주변의 트랜드 세터들은 단지 여행가방에 스티커를 붙여 자기만의 아이덴티티를 만들기 위해 리모와를 선택한다. 이 얼마나 비이성적인 행동인가.

`소비자의 선택을 유도하는 부드러운 개입`이 성공하기 위해서는 `별로 중요하지 않은 요인`처럼 보이지만 소비자의 감정적 선택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넛지`를 상품기획 단계에서부터 고민할 필요가 있다. 비슷비슷한 속성을 가진 제품을 만들어놓고 단발성 이벤트나 바이럴 영상으로 해결하려 하는 넛지 마케팅은 소비자의 일시적인 주목을 끌기 위한 잔재주에 불과하다.

[박명진 이노션 컨텐츠크리에이티브센터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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