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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0년前 조선의 세종대왕은 시장원리 도입 선구자였다
세종대왕 즉위 600주년 특별기획
한국경영硏·매일경제 세미나
기사입력 2018.02.23 04:04: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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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경영硏·매일경제 세미나서 찾은 세종의 `3가지 지혜` ②

지난 7일 서울 그랜드하얏트 호텔에서 열린 `2018년 변혁기 혁신전략-세종대왕에게 길을 묻다` 두 번째 세미나에서 박현모 여주대 교수가 발표하고 있다. [김재훈 기자]
규제의 적용 범위 및 강도를 둘러싼 논쟁은 시대와 국가를 막론한다. 산업혁명 시기 마부들의 일자리와 안전 문제 등을 고려해 자동차 속도를 제한하고 마차의 뒤를 따라 주행하게 한 영국의 `적기조례(Red Flag Act)`는 유명한 사례다. 일각에서는 이 같은 규제 때문에 영국이 산업혁명을 제일 먼저 시작하고도 이후 철강, 화학, 자동차 등 산업 분야에서 미국과 독일 등 후발 주자들에게 뒤처졌다는 분석도 나온다.

인공지능(AI)·자율주행차 등 신기술과 그 산업을 특징으로 하는 4차 산업혁명이 시작되고 있는 현재, 규제는 다시 한번 사회의 뜨거운 이슈로 떠오르고 있다. 전례 없는 기술과 사업 모델이 속속 등장하고 있는 상황에서 이를 방해하는 기존 규제를 없애야 한다는 입장과 각종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해 규제가 필요하다는 입장이 충돌하고 있다.

특히 한국은 과도한 규제로 많은 비판을 받아왔다. 대표적으로 미국의 차량 공유 기업 `우버`는 여객자동차 운수사업법에 저촉돼 한국 사업을 철수한 바 있다. 문재인정부는 이 같은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새로운 제품이나 서비스에 한해 일정 기간 동안 기존 규제를 면제·유예해주는 `규제 샌드박스(Sandbox)` 제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규제 샌드박스는 영국에서 처음 도입한 모델이다. 규제 샌드박스를 통해 블록체인 기술을 활용한 국가 간 결제서비스를 만든 `에피파이트` 등 많은 스타트업이 다양한 비즈니스를 시험할 수 있었다. 이후 스위스와 싱가포르 등 10개국이 규제 샌드박스를 도입했고, 한국 미국 일본 등 11개국이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

한편 외국의 모델만 좇아갈 것이 아니라 과거 역사에서 답을 찾아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박현모 여주대 교수가 대표적이다. 박 교수는 특히 조선시대 세종대왕의 정책에서 규제와 관련한 모범 답안을 발견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17년간 세종대왕을 연구한 그는 여주대 세종리더십연구소장을 맡고 있다. 삼성SDS, 포스코 등 다양한 기업과 기관에서 세종대왕의 리더십에 대해 강의한 바 있다.

지금보다 국가의 개입이 현저히 많을 수밖에 없는 통치구조인 왕조국가에서 어떤 답을 찾을 수 있다는 것일까. 매일경제 비즈타임스는 세미나 `2018년 변혁기 혁신전략-세종대왕에게 길을 묻다`에서 세종대왕 시대의 규제 정책에 대해 자세히 들어봤다. 이는 매일경제와 한국경영연구원이 공동 주최하고 재단법인 장은공익재단과 세종리더십연구회 등이 후원 기관·단체로 참여하는 연간 세미나로 지난달에 이어 지난 7일 서울 그랜드 하얏트 호텔에서 두 번째 세미나가 열렸다. 이날 세미나에선 박 교수가 발표를 맡고 김용준 성균관대 교수와 한정화 한양대 교수가 토론자로 참여했다.

# 和賣(화매) : 시장 원리 활용

박 교수는 이날 발표에서 "조선시대 하면 선비, 농민, 공장, 상인 순의 사회계급을 나타내는 사농공상(士農工商)을 먼저 떠올리지만 세종대왕은 시장을 존중했다"면서 세종대왕이 재위 3년째인 1421년 곡물상의 도량형 농간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펼친 정책을 대표적인 예로 들었다. 당시 곡물을 파는 상인들이 저울 무게를 조작해 부당한 이득을 취하는 것이 문제가 되자 담당 관서에서는 나라에서 일률적으로 저울을 만들어 배포하는 동시에 엄하게 처벌할 것을 제안했다. 국가에 의한 규제 강화를 해법으로 내놓은 것이다.

"저울을 더 많이 만들어 경시서(물가조절기관)에 두어, 백성들로 하여금 자유롭게 사가도록 하라."(세종실록 3년 8월 18일)

하지만 세종대왕의 답은 뜻밖이었다. 저울을 만들되 일방적으로 나눠주는 것이 아니라 돈을 주고 사 가게 한 것이다. 박 교수는 이에 대해 "일방적으로 배포할 경우 필요 없는 사람도 받아가 재정이 낭비될 수 있고, 배포 권한을 가진 관리들이 농간을 부릴 수 있는 부작용을 방지하기 위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비록 국가에서 판매하기는 하지만 시장 원리를 도입해 각종 부작용을 사전에 차단하면서도 불량 저울이 자연스럽게 도태되도록 한 것이다. 박 교수는 "세종대왕 실록에 보면 `조화로운 판매`라는 뜻의 화매(和賣)가 굉장히 많이 나온다"며 "각종 사회·경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시장 거래를 유용한 해결책으로 삼은 것"이라고 설했다. 이로 인해 나라에서 만든 정확한 저울이 자연스럽게 퍼져 나갔고, 불량 저울은 점차 줄어든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시행 이후의 기록을 보면 저울 1500여 개가 전국으로 퍼져 나갔으며 이후 더 많은 저울을 만들어 판매하게 한 것을 확인할 수 있다.

# 民力勿傷(민력물상) : 백성에 모든 답이 있다

민력물상은 `백성의 힘을 상하게 하지 않는다`는 뜻으로 세종대왕의 정책 철학을 잘 보여주는 말이다. 박 교수는 "세종대왕은 문제도 백성에게 있고 해법도 백성으로부터 나온다고 믿었다"면서 백성 간 자율적 해결을 강조한 정책 사상이 시장 원리 도입의 바탕이 됐다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세종이 이러한 철학을 갖게 된 데 대해 "백성들이 스스로 학습해 현명하게 생각하고 판단할 줄 알아야 제도가 제대로 시행된다고 믿었다"며 세종대왕 재위 13년째인 1431년 화폐 사용을 장려하기 위해 펼친 정책을 사례로 제시했다.

당시 조선은 백성들의 화폐 활용도를 높이기 위해 군량미로 보관하고 있던 쌀 3000석을 백성들에게 화폐를 받고 판매했다. 그저 화폐를 사용하라고 강제한 것이 아니라 이번에도 시장 원리를 도입한 유인책을 생각해낸 것이다.

하지만 조선은 곧 그 부작용에 직면했다. 관리들에게 연줄이 닿는 힘 있는 자들만이 구매 기회를 얻는 것이었다. 당시 대책으로 쌀을 사려는 사람들의 인원수와 금액을 미리 파악해 골고루 나눠주는 방안과 노약자들은 따로 줄을 서게 하자는 방안 등이 나왔지만 세종대왕은 이를 채택하지 않았다. 각각 관리들이 권한을 악용할 우려가 있고 부유한 백성은 두 곳에 다 줄을 설 수 있는 반면, 가난한 백성은 생계 문제로 인해 한 곳밖에 줄을 설 수 없어 불공평하다는 이유였다.

세종대왕은 대신 판매 장소를 세 곳으로 나눠 일정 간격으로 예고 없이 불시에 판매하게 했다. 더 많은 백성이 이용할 수 있게 하기 위해 판매 창구를 분산하되 예고를 없애 정보의 독점 문제를 해소한 것이다. 박 교수는 이 정책에 대해 "그러면서도 일정 간격으로 판매하게 한 것에 주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고는 없지만 일정한 간격이 있기 때문에 백성들이 이를 학습해 자신에게 가장 유리한 판매 장소를 효율적으로 이용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세종대왕의 정책과 규제에 대한 철학은 이 부분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정책을 시행할 때는 물론이고 그 부작용을 막을 때에도 백성들의 자율성과 시장 원리를 우선으로 삼은 것이다. 박 교수는 "백성들은 스스로 가장 효율적인 방법을 생각함으로써 자기결정력을 높일 수 있었다"면서 "이것이 훈민정음을 반포하고 해시계와 물시계를 개발한 업적의 밑에 깔려 있는 핵심 철학"이라고 설명했다.

# 自不知者(자부지자) : 싱크탱크 통한 철저한 검증

박 교수는 "세종대왕이 가장 많이 한 말 중 하나가 `나는 잘 알지 못한다`는 뜻의 자부지자였다"면서 세종대왕이 모든 해결책을 스스로 생각해낸 것은 아니라고 설명했다. 박 교수는 "세종대왕의 정책 뒤에는 집현전과 경연이라는 두 싱크탱크가 있었다"며 "세종대왕은 이를 통해 정책을 철저히 검증했다"고 말했다. 박 교수는 특히 세종대왕이 새로운 제도를 도입할 때 집현전을 통해 이와 관련된 과거 사례를 철저히 검증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당시 어떤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어떤 정책을 펼쳤는지, 그 효과는 어떠했고 부작용은 무엇이었는지를 최대한 참고해 정책을 결정하게 한 것이다.

이후엔 집현전 학자와 실무 담당자들이 모여 토론을 하는 경연을 통해 다양한 측면에서 다시 한번 검증하는 과정을 거쳤다. 세종대왕은 총 1989회의 경연을 연 것으로 유명하다.

박 교수는 또 이 같은 철저한 검증을 통해 정책이 정해지면 이후에는 일관되고 지속적으로 추진한 것 역시 세종대왕의 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요인으로 꼽았다. 앞서 언급한 도량형 정책은 세종 3년부터 13년까지 총 10여 년간 이뤄졌다.

가상화폐 무리한 규제…관습에 젖은 공직사회…

`2018년 변혁기 혁신전략-세종대왕에게 길을 묻다` 토론에서는 최근 한국 정부가 가상화폐 규제 수립 과정에서 보인 모습을 놓고 쓴소리가 이어졌다.

먼저 김용준 성균관대 교수는 "지금 정부는 규제를 만들어주지 않으면 국민을 행복하게 만들어주지 못한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가상화폐 거래소를 완전히 폐지하는 방안 등 과도한 규제가 논의된 것을 지적한 것이다.

김 교수는 "잠깐 혼란이 있어도 차라리 규제를 만들지 않는 것이 후대에 더 긍정적으로 평가받을 수 있다"면서 "세종대왕 시대에 백성이 스스로 학습해 현명한 결정을 내렸듯, 국민들로 하여금 시장의 움직임과 판단을 기다리는 법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줘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정화 한양대 교수는 "전문가 간에도 의견이 갈리는 문제인데 깊은 연구가 이뤄지지 않고 정책이 발표됐다"면서 절차상 문제를 제기했다. 실제로 규제를 마련하는 과정에서 정부 부처 간 혼선을 보여 투자자들이 실질적인 피해를 입기도 한 것으로 알려졌다. 세종대왕이 집현전과 경연을 통해 참고 사례를 연구하고 다양한 담당자의 의견을 들은 것과는 달리 충분한 검증 과정을 거치지 않은 것이다.

토론자들은 이외에도 한국 정부가 전반적으로 과도한 규제 정책을 펴고 있다면서 이에 대한 대책과 변화를 촉구했다. 그중에서도 공직사회의 문화 개선이 시급한 과제로 꼽혔다.


규제를 직접 적용하고 시행하는 공직사회가 관습에 젖어 새로운 기술과 사업 모델 등을 포용하지 못하면 아무리 좋은 규제를 만들어도 원래 취지에 맞게 잘 시행될 수 없기 때문이다.

한 교수는 "현재 공직사회는 무력감에 젖어 있다"고 지적하며 민간 전문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장기적인 문화와 제도 개선을 주문하면서 "단기적으로는 적절한 인재를 채용하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이라며 "다양한 혁신 경험이 있을 뿐만 아니라 불합리한 규제의 맹점을 실제로 겪어본 민간 전문가들을 채용해 권한을 줄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 주최 : 한국경영연구원 / 매일경제신문사
※ 후원 : 재단법인장은공익재단 / 세종리더십연구회

[박종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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