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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oks&Biz] 통계가 외면한 `진짜 경제` 찾아…10년간의 글로벌 탐험기
극한 경제 Extreme Economies / 리처드 데이비스 지음
기사입력 2019.11.07 04:05: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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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리아 북부 이들리브주에서 화학 무기로 의심되는 공격이 발생해 의식불명 상태에 빠진 어린이들이 산소호흡기에 의존한 채 치료를 받고 있다. [매경DB]
이게 다 경제 탓이다. 전 세계 최고 명문 대학 중 하나로 꼽히는 런던정경대(LSE)에서 경제를 공부했다는 리처드 데이비스는 숫자를 믿지 않는다. 때론 자신이 읽은 것들조차 믿지 않는다. 시장 바닥에 직접 찾아가 사람들을 만나 얘기를 나눠봐야 경제를 안다고 믿는다. 연구실에서 숫자만 들여다보고 공식만 파는 것은 경제학이 아니라 생각한다.

오히려 경제학자들이 소위 `이례적인 것(아노말리)`이라 해서 버리는 데이터 속에 진짜 스토리가 숨어 있다고 본다. 비록 그곳이 비행기로는 도저히 갈 수 없는 곳이라든지, 재난이 닥쳐 살 집까지 다 떠내려 가버린 지역이라 할지라도.

돈키호테가 따로 없어 보이지만 실제 데이비스는 멀쩡한 런던 출신 경제학자다. LSE 펠로로 경제정책, 저널리즘을 전공한 그는 영국 재무부에서 경제자문위원회 의장, 영국 중앙은행인 영란은행에서 경제학자이자 총재의 연설문 담당관을 거쳤다. 2015년부터는 영국 최고의 경제잡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경제담당 에디터까지 맡았다.

데이비스가 처음부터 책을 내려고 험한 곳을 찾아다닌 건 아니다. 이코노미스트, 가디언 등 여러 신문·잡지에 기사를 싣기 위한 취재 여행을 떠나다 보니 한 권의 경제적 여행기가 묶여 나왔다.

이 책이 9월 펭귄출판사에서 나온 `극한경제: 생존, 실패, 그리고 미래(Extreme Economies: Survival, Failure, Future)`다. 부제는 `세계의 한계에서 나온 교훈(Lessons from the World`s Limits)`.

책 속에는 경제학적 생존·실패·미래를 보여주는 9곳의 경제가 등장한다. 회복의 경제학을 보여주는 1부(생존)에서는 인도네시아 아체, 요르단 자타리, 미국 루이지애나가 배경이다. 성장 잠재력을 잃어버린 경제로 표현된 2부(실패)에서는 파나마의 다리엔, 콩고민주공화국의 킨샤사, 영국의 글래스고가 나온다. 마지막 3부(미래)에서는 내일의 경제로 일본 아키타, 에스토니아 탈린, 칠레 산티아고가 소개됐다.

2004년 크리스마스 다음 날 평온하게 온 가족이 자고 있던 인도네시아의 휴양지 아체지구에 지구상에서 가장 큰 쓰나미가 지나간다. 14개 마을에서 22만명이 넘는 사람이 죽임을 당한 전 세계 전무후무한 기록이다. 이날의 참상을 고스란히 기억하는 해변가의 카페 주인 이야기에서 1부가 시작된다.

생존의 경제학은 잿더미에서 살아남은 이들에게 구전된다. 요르단 북부 자타리에는 시리아 내전으로 인한 가장 큰 난민캠프가 생겼다. 죽음의 총탄을 피해 온 이 지역에도 슈퍼마켓이 있다. 뭐든지 비싼 전쟁 지역이지만 뉴질랜드에서 수입된 2.25㎏짜리 분유, 미국산 델몬트 캔 토마토가 팔린다. 데이비스는 난민캠프에 직접 찾아가 생필품이 어디서 들어와 어떻게 가격이 매겨졌는지를 추적한다. 경제학 보고서에 흔히 등장하는 막대그래프와 함께.

2부 실패한 경제 이야기도 흥미롭다. 특히 영국 조선업이 시작된 글래스고 경제를 읽다 보면 자연스레 한국의 거제가 떠오른다. 한때 과학·기술·예술의 발달로 런던과 어깨를 나란히 했던 글래스고가 20세기 들어 어떻게 모든 영화를 잃고 영국에서 가장 문제 많은 도시로 전락하게 됐는지가 고스란히 들어 있다. 인구 1000만명의 아프리카 최대 메가시티 킨샤사나 지구상 최대 무법 지역 파나마 다리엔 지구의 경제도 섬?한 이야기들이다. 지속적으로 우하향하는 콩고민주공화국의 60년 치 국내총생산(GDP) 그래프와 함께 곁들여 보면 최악이다.

마지막 3부 미래의 경제라고 해서 밝은 그림을 상상했다면 착각이다. 미래 경제가 맞닥뜨릴 세 가지 인류 공통의 문제인 고령화, 신기술, 불평등이 낳은 지역경제 3곳이 등장한다. 인구는 늙어 가고 기술은 선진화돼 가는데, 불평등은 점점 심해지는 곳. 데이비스가 찾아간 일본 북부의 아키타는 이를테면 경제학이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지역이다. 노인 인구는 마트에서 가격을 할인해도 물건을 사지 않으며, 갖고 있는 집을 팔지도 않는다. 시장경제가 사라지고, 가격도 형성되지 않는 경제학 구제불능의 도시인 셈이다.

데이비스는 경제적 변화에 적응하기 위해 인간이 어떻게 반응하는지를 알아보려면 극한 환경도 연구 대상이 돼야 한다고 봤다. 전쟁터 근처 난민캠프, 자연 재해로 소실된 지역경제, 고령화의 최전방 등 이 책에 나오는 모든 삶은 엄청난 충격에 부딪힌 삶이다. 경계 지역에서 살아가는 이들에겐 숫자나 들여다보는 경제학자나 표에 열중하는 정치인은 필요없다. 과학자들마저 비표준이라고 버려둔 이 지역에서 경제학이 설명해줄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경제가 어떻게 성공하고 실패하는지를 알아보기 위해 데이비스는 전 세계의 비포장도로를 달렸다. 깔끔한 고속도로 위에서 경제학자들이 주식시장 충격·부동산 버블·금융위기를 설명할 때 그는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찾아 헤맸다. 책에 나오는 9개의 경제는 우울하기 짝이 없고, 정신 차리고 들여다보면 비참한 그래프들도 많다.


이렇게 우울한 여행기에 빠져드는 이유는 작가의 유려한 글솜씨 때문일 것이다. 영란은행 총재 연설문 작성자 출신이라는 저자의 약력을 다시 한번 들춰 보게 되는 것도 같은 이유겠지만.

모든 허물과 미욱함에도 불구하고 경제학자들이 극한경제를 들춰 보는 이유는 하나다. 삶이 거기 있으므로. 그리고 우리의 미래가 거기 있으므로. 새삼, 이게 다 경제 탓이다.

[한예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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